The Heart of a Hanok

본 글은 Korea Magazine (www.korea.net)에 실린 글입니다. 
내 마음속의 한옥 
한옥을 우연히 발견한 한 영국인이 실제로 그 안에 살면서 직접 겪은 기쁨과 아름다움을 담은 글입니다. 
글: 데이비드 킬번(David Kilburn) 그림: 조승연 

오늘날 한국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한옥에 거주하려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많은 한국인들이 살던 공간이 바로 한옥이었다.  1960년대에 서울의 풍경을 담은 사진만 해도 대부분의 면적이 한옥으로 채워져 있었다는걸 볼 수 있듯이 말이다.   

한옥은 수 세기동안 진화해오던 한국 전통 건축양식으로, 그 건축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돌 기반 위에 나무를 끼워*??엮이도록 설계하고 나무 기둥을 뼈대로 한 구조물에 기와를 얹는 형태이다.  전통적으로는 느리게 자란 한국 고유의 소나무를 이용하여왔고, 이것은 밀도가 높고 단단한 재료였다.  대체로 한옥은 숙련된 목공들이 협력해서 못이 필요없도록 나무를 엮을 수 있도록 다듬은 후 이를 조립하고 좀 더 가늘은 통나무들이 지붕의 뼈대를 이루어낸 후 지푸라기와 진흙으로 채우고 나서 기와를 올려놓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붕은 대체로 건물크기보다 조금 크게 뻗어서 처마를 이루고 그 밑에 공간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주었으며, 온돌이라 불리는 돌 바닥은 그 아래가 부엌이나 바깥의 불 때는 공간으로 이어져 있었다.  온돌이라는 말 자체가 "따뜻한 돌"이라는 뜻을 지녔듯이 이는 난방을 위해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전통적으로는 장판의 색이 세월에 걸쳐 갈색으로 변하는 것 만으로도 온돌의 어느 부분이 가장 뜨겁게 달궈지는지 알 수 있었다. 

나무의 깊은 색은 흰 벽과 대조를 이루었다.  페인트가 널리 보급되기 이전에는 한국의 장인들은 옥수수대와 미역을 같이 삶아 요즘 페인트에서 느낄 수 없는 따뜻한 기운의 흰색을 창출해내곤 하였다.  인테리어 역시 특유의 흰색을 주 색으로 하였고 창호지로 문을 만들었었다.  이 모든 재료들; 나무, 짚, 진흙, 돌, 종이 등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었고, 장인의 손땀으로 만들어진 한옥들은 세월이 지날수록 주인의 자취가 진하게 뭍어나는 살아있는 건축물이었다. 

필자의 한옥 체험은 1988년, 저널리스트 신분으로 비즈니스 리더들을 인터뷰하러 서울에 왔을 때 시작되었다.  나의 한국인 아내는 빌딩과 기업 본사 건물들만 볼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도 체험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나를 인사동으로 데려갔었다.  역사적인 마을에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큰 나무 대문 위에 기와 지붕 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광경을 보았다.   

"저건 무엇인가요?"

"한옥이지요."

"한옥이란게 뭐지요?"

"한국사람이 사는 일반 가정 집 입니다"

"나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군요.  저기 (마침 문 밖으로 나오던)저 분한테 얼마에 팔 수 있는지 물어봐 주시오" 

그 한옥은 매물로 나와있지 않았으나, 근처에 비슷한 집들이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 분의 안내에 따라 우린 가회동으로 갔다.  몇몇 한옥들을 구경하다가 우린 가회동 31-79번지에 도달하였고, 그 집 안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아내에게 이야기 하였다.  "바로 여기야.." 

이렇게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나의 한옥과의 삶과 끝없는 탐험은 시작되었다. 

나에게 당면한 첫 도전은 어이없게도 바로 다음날, 그 집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의 가회동은 지도상에 없는 이름도 없는  골목길로 미로와 같이 얽혀있었고 나는 단지 방향감각과 햇빛의 방향으로만 의지해서 찾아야 했다.   

우리가 구입해서 살고 있는 한옥은 1929년 양반집 가족에 의해 지어졌다.  이전 집주인은 삶의 대부분을 이 한옥에서 보냈었고, 거의 변화를 주지 않은 해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살기 시작했을때는 약간의 보수작업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현대식 부엌과 화장실을 설치하였고 전기도 들여왔다.  온수와 난방을 위해 연탄 대신 가스 보일러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후에는 인터넷과 위성TV가 설치되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근처 약수터에서 식수를 구했지만, 수돗물이 더 안전하다는 검사결과가 나왔고, LPG 대신 도시가스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전통적인 한옥에서 현대식 삶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에 덧붙여서 나는 집 근처를 배회할지도 모르는 나쁜 영을 쫒아내고자 지붕에 용문양이 새겨진 기와를 얹었다. 

한옥 고유의 선과 장식들은 유럽의 목조 건축물과 확연히 구분이 간다.  기본적으로 한옥은 주변 풍광과 어우러지도록 디자인 되었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부는 비바람의 방향 및 물이 흐르는 방향까지 고려를 한다.  이런 지리적인 특성들은 마을 및 도시가 설계된 원리이기도 하며 서울 또한 그런 맥락에서 계획된 도시이다. 

날씨와 더불어 한국인의 삶과 집은 유교의 영향도 지대하다.  유교적 전통에 따라 남녀칠세부동석의 개념이 존재했고, 이는 사랑채와 안채의 구분으로 한옥에서는 나타나게 된다.  규모가 큰 한옥에서는 사랑채와 안채가 완전히 분리된 독립된 건물이었고, 심지어 담벼락과 출입문의 구별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안채에서는 아내와 딸들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었고 이들은 바느질과 부엌일을 하루 일과의 대부분으로 사용하였다.  부엌과 창고 그리고 안방은 안채에 딸린 공간들이었다.  이에 반해 사랑채는 집주인의 서재, 제사지내기 위한 공간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손님이 있을 경우 주인이 이 공간으로 안내를 한 것이다.  우리 집 또한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된 공간으로 존재한다.  비록 유교의 전통사상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지만, 각기 사용할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겐 행복한 일이었다. 

우리 부부가 장모님을 모시고 살기 시작한 이후로 한옥 체험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였다.  장모님은 김치를 직접 담궜을 뿐만 아니라 각종 된장과 고추장을 담구고 나는 새로운 미각 체험을 멈출 수 없었다. 장모님은 자연에 관심이 많아서 절에 기도하고 오시는 길에 항상 여러 산나물들을 캐오시곤 했다.  특히, 필자가 좋아했던 장모님의 작품은 직접 담그신 오디주였다. 

한옥의 안뜰에 새로 심을 나무들을 고심하던 시기에 장모님은 많은 정보를 주셨다.  "복숭아 나무를 집 근처에 심으면 혼령들을 쫒아내는 기능이 있어서 우리를 보살피려는 조상님들의 영 또한 가까이 오시지를 못한다.  단향나무는 잎이 떨어지지 않고 뿌리가 토양을 정화시키는 기능이 있어서 우물 근처에 심으면 좋다.  뜰 한가운데 큰 나무를 심으면 안된다.  빛과 온기를 차단해 버리고 가옥의 지반을 동요시켜 우환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결국 나는 단풍나무와 벚나무를 심어 계절의 변화를 강조하였고, 영국의 나의 조상들이 전통적으로 심어오던 라일락 나무 또한 심기로 하였다.  한국 전통과는 조금 멀어졌지만, 집이란 곳은 개인을 위한 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니까.. 

세계 각국의 친구들이 나의 한옥을 방문하였다.  모두들 한옥을 몹시 좋아하였고, 특이 아이들은 장독대와 마루밑을 이용하여 숨바꼭질을 하는 것을 즐겼다.  간혹가다 사전에 한국인 친구들에게 미리 한옥에서의 예절에 대한 교육아닌 교육을 받은 손님들도 있었다.  유독 눈이 많이 왔던 하루는 방문객이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신발을 벗은 후 양말만 신은 채 눈이 소복히 쌓인 안뜰을 걸어들어오기도 하였다.  이들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한옥의 편안함을 즐기곤 하였다.  목조 건물의 특징상 한옥은 진동이 느껴지고  소리를 만들기도 한다.  각 방마다 고유의 소리들을 내고, 바람소리와 발소리가 어울어져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느끼게끔 해 준다. 

필자는 특히 단풍나무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 까치가 연못으로 물을 마시러 내려오는 소리 등을 즐긴다.  낮에는 서재에서 나가면 바로 있는 식물들을 다듬고, 밤에는 해가 지면서 그림자들이 생기고 안뜰의 불이 밝아지는 걸 지켜보는 것을 즐긴다.  목조에 따뜻하게 비치는 빛과 그림자의 향연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신기한 광경이다.  한옥의 선들은 그 어느것도 완전히 똑바르거나 곡선이 아닌것이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개인적이고 인간적이고 안락한 공간의 특성이 느껴진다.  자연적인 목자재와 나무, 종이의 동질감은 콘크리트 벽 사이에서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어느날엔 옛 주인의 아들이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집을 구경하러 한옥을 찾아왔다.  그는 옛 추억이 담긴 집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있다는 것에 매우 기뻐했고, 한옥을 난생 처음 구경해본 그의 아들은 모든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 아들은 먼 훗날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자기가 어릴적에 살던 아파트 단지를 보여주고 싶을까, 아니면 잠시 방문했던 이 한옥이 더 기억에 남을까, 하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Profile: 데이비드 킬번씨는 영국출신 기자로 1988년부터 서울의 전통한옥에서 생활해왔다.  현재 한옥의 보존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http://www.kahoid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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