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한옥마을 지키다 실명한 외국인의 불멸의 한옥 사랑

데이비드 킬번과 최금옥 부부 이야기

2010년 02월 22일 (월) 09:39:30

우리는 총성 없는 문화 전쟁시대를 살고 있다. 자국의 문화를 지키고 알리기 위한 활동을 하느라 세계가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곧 3.1절을 맞는다. 독립은 지켜졌지만 문화의 전쟁 시대, 우리 문화의 주권, 독특한 아름다움을 잘 지키고 있는지 한번 돌아볼 일이다. 우리 문화를 알리거나 지키기 위한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만났다.

한옥 지킴이로 너무도 유명한 데이비드 킬번(68)과 최금옥씨(57).

최금옥씨는 가회동에 살고 있다고 했다. 사실 처음부터 한옥 지킴이 활동 취재를 위해 그와 약속을 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의 차' 전문가를 수소문하다가 최금옥씨를 알게 되었고, 그의 집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다 그 집이 외국인이 한옥을 지키려 하다가 실명한 바로 그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가 그토록 사랑했다는 호랑이 그림, 그리고 그가 사랑한 한옥을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내가 꼭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그 의미를 다시 일깨우기 위해 그 집에 가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운명론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되었다.

전화로 주소를 전해 듣고 번지수만 보고 그 집을 호쾌히 찾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전화를 했다. 갤러리라 이름이 붙은 한 찻집 앞에서 그를 만나 그의 집을 따라 들어갔다.

Jade Kilburn

▲ 가회동 자택에서의 최금옥씨 사진: 박명현 기자

그의 집으로 가는 골목은 구불구불했다.  지금은 최금옥씨 혼자 지키고 있는 집은 고즈넉했다. 김기덕 감독의 유명한 영화 <빈 집>은 바로 이 집에서 촬영되었다. 김기덕 감독의 청을 듣고 촬영 장소로 호쾌히 허락해 주었다고 한다. 그의 남편 데이비드 킬번이 유독 사랑했다는 호랑이 그림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 서재와 맞닿아 있는 다실에서 최금옥씨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5년 동안의 지난한 싸움이 벌어진 전장답지 않게 한옥은 평온했고, 늦겨울 햇살이 한옥 마당에 부서지고 있었다.

2008년 암수술을 했다는 최금옥씨는 조금 지쳐보였다. 그는 찻물을 데어 차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데이비드 킬번을 만나기까지, 그리고 이곳에서 겪은 지난 5년 간의 지난했던 싸움을 들려 주었다.

데이비드 킬번과 최금옥씨가 만난 것은 1986년이었다. 영국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고 문화적 소양이 풍부한 그는 영국에 유학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최금옥씨를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다.

David & Jade Kilburn

▲ 데이비드 킬번과 최금옥 부부

 

“남편은 전형적인 영국 신사였고, 그 나라에서 마치 귀족과 같이 특별한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어요. 그런 남편이 청혼을 하자 처음에는 제가 말렸죠. 남편은 오히려 그런 점을 더 좋게 보고 거듭 청혼을 했고 1년 후에는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데이비드 킬번은 세계적인 홍보회사에서 일하기도 하고 저널리스트로 일하기도 하고 세계를 오가며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결혼해 한국을 찾았고, 한옥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남편 데이비드가 1987년 지금의 가회동 집을 보고서 사겠다는 결심을 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킬번씨가 이 집을 사기까지 결정하는 데는 2분 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남편은 자기 나라의 문화도 사랑했지만 어느 아프리카 시골 사람이 만든 작은 바구니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다른 나라 문화도 사랑할 줄 아는 박애주의자였거든요.”

영국과 일본에 집이 있고 세계를 오가며 사업을 하던 두 사람은 외국 출장을 다녀오면 한옥을 가꾸며 마음의 평화를 누렸다. 킬번씨는 외국 잡지에 한옥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글을 게재했고, 두 사람은 이곳에서 문화 행사를 개최했고 외국인들을 초청해 한옥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당시 두 사람은 차를 사랑해 외국에 차밭을 가꾸고 차와 관련한 사업을 하기도 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을 더 오래하기 위해 한국에 사업체를 만들기도 하였다.

“저 희는 그렇게 차나 마시며 조용히 살았죠. 그런데 이런 평화가 깨지기 시작했어요. 정부에서 북촌 한옥마을 가꾸기 계획을 발표하고 사람들이 갑자기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역작용으로 작용한 것이에요. 한옥을 개축하기 위한 보조금을 지원했는데 전통적인 한옥 방식이 아니라 아래는 콘크리트 건물을 짓고 위에 한옥 지붕을 얹는 이상한 방식의 2층짜리 한옥 건물을 짓는 거에요. 한옥이 아니라 한옥식 건물인 거죠. 또 투기 바람이 불면서 원주민들이 집을 팔고 이사 가도록 회유를 해서 지금은 저희를 빼고는 이 마을에 원래부터 살던 원주민이 거의 없어요. 관광객들만 오갈 뿐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가 되어버린 거에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원래 북촌 사업과 맞지 않는 위법을 해가면서 고유 유산을 파괴하는 현실을 킬번씨는 누구보다도 슬퍼했다.

킬 번씨는 영국의 유명한 전통가옥 지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주축이 되어 진행한 일도 있었고, 그 후 그 지역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유서깊은 관광지가 되기도 하였으니, 전통적인 한옥이 파괴되는 현실을 더없이 참담히 생각했다. 그는 관청에 이런 일을 막기 위한 건의를 수없이 제출했지만 민원은 해결되지 않았고 투기자들과 새로 들어온 한옥 주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국민의 세금으로 우리 고유 문화 유산을 파괴했다. 그래서 이후 www.kahoidong.com를 통해 한옥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 런 그들에게 점차 불행이 닥쳐오기 시작했다. 최금옥씨 부부는 최씨의 친정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개발업자들은 최씨의 어머니를 그 집의 주인으로 알았고, 그 집을 사기 위한 온갖 부당한 일들을 벌였다. 고의성이 역력한, 쉴 새 없이 들려오는 공사 소음들, 그리고 집 앞에 오물을 두고 가기도 하는 일들, 결국 어머니는 그 와중에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kahoidong.com home page

▲ 한옥의 원형을 보존하고자 노력한 가회동 31-79번지

불행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킬번씨는 2006년 2월 또 다시 사재산과 인권보호를 위한 활동을 하다가 폭행을 당하고 심한 충격으로 결국 시력을 잃게 되었다.

이런 비극 속에서도 킬번씨 부부는 뜻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 킬번씨는 가해자로 둔갑되어 있었다. 이것은 어머니의 죽음에 이은 또 다른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 는 지금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본을 거쳐 영국의 병원에 입원중이다. 병마는 킬번씨만 덮친 것이 아니었다. 부인 최금옥씨도 암 판정을 받고 투병중이다. 지난 2008년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도 받아 다시 건강해졌다고는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병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우아하게 길렀다는 머리는 이제 짧은 단발 머리 정도로 자라나 있다.

그는 담담히 차를 마시며 잘 표현하지 않으려 했지만 남편에 대한 속깊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도 처음에는 나서지 않으려 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저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문화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터인데…… 제 가 나서지 않으면 남편에게 너무 미안해요. 남편은 4월에생명과 관계된 중요한 대수술을 앞두고 있어요. 그런데 좀처럼 저에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그가 어떠한 상태인지 제가 정확히 알지를 못해요. 제가 가서 봐야 해요."

그는 지난 5년간 제대로 사업도 돌보지 못하고 지냈는데 이제는 남편 생명의 연장을 위해 사업에도 본격적으로 신경을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편의 치료를 위해서는 막대한 치료비가 필요하다는 것. 

아쉬움을 남기고 가회동의 구불구불한 길을 떠나올 때 그는 배웅을 나왔고, 팔짱을 끼었다.
한국이 고국인데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은 게 씁쓸하다는 그가 이방인처럼 외로워보였다.

Jade Kilburn & UCN

▲ 가회동 자택 앞에 선 최금옥씨(왼쪽). 모처럼 그는 밝게 웃었다.

그냥 소중한 것이 소중하기에 지키고자 했던 파란 눈의 외국인 킬번씨,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 것의 소중함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는 최금옥씨.

시 력을 잃어버린 것이 어찌 킬번씨 뿐인가. 정말 시력이 희미해져 가는 것은 우리인지도 모르겠다. 외국인도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채 발견하지 못한 마음의 시력. 그가 다시 시력을 되찾아 파란 눈으로 한옥의 아름다움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속은 너무나 한국적인 그러한 모습으로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면서 영원한 한국인의 친구로 그렇게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가회동을 나서며 킬번씨 부부가 정말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차창 밖으로 멀어져 가는 가회동을 내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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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 한옥에서 살아온 나의 한옥 사랑이 이웹싸이트의 계기가 되었다. 현재는 공익을 도모하기 위해 발전해 나가고 있다. 공익을 위하여, 우리는 서울시에 남아있는 전통 가옥인 한옥을 보호하는 데에 생겨나는 문제점들에 대한 문서, 수필, 의견 또 사진들을 발표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하회마을과 양동, 이 두 한옥 마을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 지정지로 인정을 받으면서, 전통한옥은 전 세계의 관심사가 되고있다. 우리는 이 웹사이트를 통해 독자들에게 한옥이 어떻게, 왜? 계속 파괴되어지는지, 누가 그 책임을 지고 있는지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며 또한 어떠한 조취가 취해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조성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 웹사이트가 사라지는 서울의 한옥 문화유산의 보호를 돕기 위해 우리 개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이다. David Kilb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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